공명의 죽음을 끝으로 사실상 연의는 거의 마무리된다. 위의 고평릉 사변이나 오의 이궁의 변 같은 실제 역사에서 꽤 중요했던 사건들도 간략화되거나 생략됐다. 기본적으로 무협지의 성격이 있는 연의의 특성상 저런 정치적 암투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각설하고..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서 들었던 잡념들을 정리해보자.
- 외척과 환관 자체가 문제였는가? 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지 못한 시스템의 부재와 황제 개인의 역량에 좌우되는 절대군주제에 내재된 한계가 아닌가?
- 청류는 선하고 탁류는 악한가? 그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두 정치집단의 대립은 아니었을까? '청'과 '탁'이라는 네이밍은 프로파간다의 결과물이 아닌가? 마치 볼셰비키(다수파)와 민셰비키(소수파), 혹은 신법당과 구법당처럼.
-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던 당시에 호족들이 이동을 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을 텐데, 그들은 어떤 수단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도 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대표적인 예 미축)
- 혹자가 말했듯이, 유비와 제갈량을 대표로 하는 촉한 집단은 정말 새로운 시대를 부정하고 과거에 묶여있는 보수주의자였나? 그것은 2000년 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제멋대로 붙인 딱지가 아닌가? 그런 논리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보수주의자에 반동주의자인가?
- 만약에 유비가 한을 재건했다면 관우, 장비, 공명 등 공신들도 숙청당했을까? 아니면 광무제를 본받아 또 다른 호족 연합국가의 형태로 한나라 시즌3을 열었을까?
- 충효라는 가치가 중시되던 시절에 3년상을 두 번이나 치른 원소는 명성을 날렸다. 현대인이 봤을 때는 너무나 무의미한 6년의 세월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시대에 재테크를 잘했다고 칭송받고 부러움을 받는 모습들은 어떤가? 어느 시대나 당시를 대표하는 사상과 논리가 있고 그것을 충실히 따르길 권장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거 아닌가?
- 역사적 흐름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민중이 아니라 호족 같은 유력자 아닐까? 아니, 만인이 평등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현대사회의 믿음이 오히려 기만 아닌가?
이 외에 더 있었을 텐데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인 듯하다. 좀 더 나이 들고 다시 한번 삼국지를 본다면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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