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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2021

(2021_41) 빚으로 지은 집 - 박기영

이번에 고승범 위원장의 후임 금통위원으로 지명된 연세대 박기영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신임 금통위원의 현 가계부채에 대한 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급하게 읽어보았다. 2008년 미국 주택시장 버블 붕괴의 원인과 경제에 끼친 악영향, 그리고 해결방안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시점은 2014년인데, 오히려 당시보다 현재 한국시장과 딱 들어맞는 책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비록 2008년 미국과 2021년 대한민국의 주택시장은 시점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과도한 부채. 여기에 우리는 전세대출까지 끼어 있어서 더욱 심각한데 최근 한은의 행보를 보면 박기영 교수가 금통위원으로 지명된 것이 딱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우선 논리를 전개하기에 앞서 대전제 하나가 있다. 대출로 일으킨 자산시장 버블은 '반드시' 폭락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상승한다고 믿는다면 이 책의 내용 전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저자는 상승장에서 얹는 차입자의 레버리지 이익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all or nothing 방식의 현행 주담대 방식을 비판한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주택 상승으로 인한 자본이익과 주택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 모두 차입자가 떠안는 이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택 시장 폭락 시 차입자의 순자산을 문자 그대로 삭제되는 반면 은행은 담보로 인해 피해가 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손실을 떠안은 가계의 소비여력은 급감하면서 경제는 대침체 되고, 수요 부족에서 촉발된 침체는 공급까지 영향을 주어 실업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기존에 대출을 받지 않은 건강한 가계도 피해를 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약탈적 금융방식을 방지하기 위해 저자는 차입자와 은행이 자본이익/손실을 모두 공유하는 대출 방식을 제안한다. 개념은 간단하다. 보험업계로 치면 그저 공동 재보험의 아이디어와 동일하다. 집값이 올랐고 이를 매도하여 이익을 봤다면 그 이익의 x%를 은행이 가져간다. 대신 집값이 떨어졌을 때도 대출의 일정 부분이 탕감되어 매달 내는 원리금을 줄여준다. 이는 차입자의 순자산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방지해주며, 그로 인해 폭락장이 와도 소비여력을 일부 살려두어 경제가 침몰하지 않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더구나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니 대출이 없는 '선량한' 가계들의 혈세가 '투기꾼'을 돕는데 쓰이는 일도 없다.

 

이것이 탈렙이 말한 skin in the game의 한 종류가 아닐까? 아이디어 자체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조중동이 아주 싫어할만한 내용이라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더군다나 지금같이 다수가 집값은 '영원히' 오를 것이라고 믿는 상황에서 자본이득이 났을 때 은행과 그 일부를 공유하는 이 방법을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가즈아~"하고 외치는 그들이 과연 그러한 보험에 대해 니즈가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박기영 교수의 금통위 합류와 함께 당장 다음주 화요일(10/12)에 금리 인상 여부를 발표한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10월에 금리를 올릴 거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일주일 남은 지금,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과연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임 금통위원은 어떤 표를 던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