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중국사의 세계로 돌아왔다.
근대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군벌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조금 과장하면 중국 근대사가 곧 군벌사라고 봐도 될 정도니까. 지금까지 내가 알던 중국사는 굉장히 피상적으로, 대충 사건만 읊자면 신해혁명 - 북벌 - 국공합작 - 중일전쟁 - 국공내전 -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정도이다. 이 사건들 사이를 꽉 채워주는 게 바로 군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군벌은 누구인가? 정확한 정의와 배경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쉽게 이해하자면 중국 난세에 수많은 지역에서 등장했던 군사력을 가진 모든 세력들을 군벌로 보아도 무리 없을 것 같다. 특히 왕조의 창업자들은 예외 없이 군벌 출신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보통 '군벌'이라고 말할 때는 중국 근대사에 등장했던 세력들만을 가리킨다.
그들의 기원은 태평천국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의 정규군인 팔기군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하여 반란군을 저지하는데 무리가 있었다. 결국 정부는 (그토록 꺼려하던) 지방의 사병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용인하고 그들에게 태평군을 토벌하도록 허용하게 된다. 그 사병의 대표 격이 증국번의 상군과 이홍장의 회군인 것이다. 난을 진압 후 상군은 증국번에 의해 자진 해산하지만 이홍장의 회군으로 대부분 흡수됐고, 후에 이홍장이 중앙에서 권신이 되면서 회군은 최정예 북양군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패배를 책임지고 이홍장이 물러나면서 후임 원세개가 북양군의 현대화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이로써 원세개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신군(북양군벌)이 시작되었다. 북양군벌의 존재로 신해혁명 후 손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북양군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청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손문은 원세개가 믿을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면서도 원세개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손문은 공화국을, 원세개는 자신의 제국을 원했으므로, 이 둘의 청의 멸망이라는 지점에서 합의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원세개는 청을 멸망시킨 후 손문과의 약속은 개나 줘버리고 기어이 황제를 칭하고 만다. 손문은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자신의 군대를 갖지 못한 손문은 다른 지방 군벌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물론 결과적으로 북양군을 토벌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원세개 사후 북양군은 직계, 환계, 봉계 3개의 파벌로 나눠졌고 점점 파벌 간 경쟁이 격화된다. 한편 손문은 군사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소련의 도움을 받아 군사학교를 설립하는데 이게 그 유명한 황포군관학교이다. 손문 사후 장개석이 그 뒤를 이어 국민당 군대와 남방 군벌을 연합하여 북벌을 감행한다. 총 2차에 걸친 북벌 끝에 장개석은 전 중국을 외양적으로나마 통일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통일 후 자신의 힘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장개석은 다른 군벌들의 힘을 약화시키기로 결심한다. 유방과 주원장의 숙청, 조광윤의 배주석병권 등 대업을 이룬 뒤 공신의 병권을 뺐는 것은 공식에 가깝다. 앞의 사례와 장개석의 차이가 하나 있다면, 장개석은 다른 군벌 세력에게 비즈니스 파트너였을 뿐 애초에 주종관계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지도 않은데 무리하게 그들의 힘을 빼려고 하니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 대륙은 중원대전이라는 최악의 내전으로 접어들게 된다. 장학량의 도움으로 장개석이 최후에 승리하긴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난을 겨우 진압한 그는 밖으로는 일본, 안으로는 공산당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모택동에게 패배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몇 개 적자면 다음과 같다.
- 사상이 빈곤하면 현실이 공허하고, 힘이 없으면 비참하다 - 쑨원을 보며.
- 정치는 현실에 기반한 타협의 산물이다 - 군벌들의 이합집산을 보며.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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