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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2020

(2020_60)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 - 리처드 플레처

이슬람이 발흥한 시기부터 근대까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교류사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양 진영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일반적인 고정관념과 달리 그들이 늘 다툰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교역을 했고, 활발한 번역을 통해 지적 세계를 확장하기도 했다. 어떤 지역은 두 종교가 물리적으로 공존하며 살아가야 했던 지역이기도 했는데, 오늘날 스페인과 레반트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세월을 부대끼고 살아왔음에도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공존을 이루어본 적이 없는데, 이는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오늘날 둘 사이는 더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했으니 적어도 내 생애에 양측의 화합을 보는 것은 난망한 일일 듯하다. 하루아침에 사이가 좋아지기엔 양측이 멀리한 역사는 너무나도 길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너무나 많고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두 종교 모두 동일한 뿌리를 가진 아브라함 계통 종교라는 것을 꼽고 싶다. 똑같은 하느님(알라)을 섬기지만 교리의 디테일은 너무나도 다른 점. 그래서 서로를 이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것. 차라리 북유럽처럼 아예 다른 계통의 종교를 믿는 곳이었다면 '개종'의 대상으로 바라봤겠지만, 기독교와 이슬람은 애초에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 개종의 대상이 아닌 섬멸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한쪽이 한쪽을 없애버리기엔 양측 모두 너무나 거대한 문명권을 형성했다는 것... 양측의 지식인(성직자)들조차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한 것이 아닌, 교리의 허점을 찾기 위해 연구해왔다는 점은 둘 사이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세 황금기를 뒤로 하고 오늘날의 보수적인 이슬람의 모습을 보며 역사의 교훈을 느낀다. 사실 이렇게 초기에 어떤 세력이 성장하다가 쇠퇴하는 모습은 역사에 수없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예는 대부분 현재는 사라진 왕조들인데 반해, 이슬람은 종교로서 문화권/정치체의 집합으로서 현존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압바스 시대에 이슬람은 엄청난 지적 탐구심과 다양성에 대한 관용으로 기독교권의 지식(고대 그리스 문화)을 거리낌 없이 수용, 발전시켰다. 그들이 엄청난 지적 발전을 이루자 10~12세기에는 기독교 측에서 이슬람의 지식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가 르네상스와 역사적 의미의 근대의 시작이다. 하지만 지적으로 추월당한 이슬람권은 기독교 측을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스만이라는 초강력 국가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슬람 세계의 마지막 불꽃이 되어 버렸다. 선진적인 상대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하는 자세, 노력, 포용성 등은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했다. 이는 개인에게든, 국가에게든, 혹은 문화권에게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