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이념에 의해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때문에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대해 객관적으로 배우기 참으로 어려운 환경이다. 미디어에서의 담론에 있어서도 용어 오남용 문제는 심각하다. 거의 뭐 공산주의=사회주의=빨갱이=세금 많이 걷음=반재벌=반자본=규제.... 이런 막무가내식 아니던가? 최소한 어떤 사상을 비판을 하려면 그 배경과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레닌/트로츠키/스탈린/유럽 좌파 정당/아시아와 러시아 혁명/적색 개발주의 이렇게 6개의 주제로 나눠져 있다.
우선 그동안 희미하게 알고 있던 개념을 확실히 잡게 된 게 하나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가에게 국적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민족/국적보다 계급이 더 중요하고, 그게 곧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쳤던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코민테른의 사상적 기원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노동자는 한국의 자본가보다 일본의 노동자와 동지 의식을 느끼고 단결해야 한다는 뜻이다(비록 그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한대도 말이다). 민족주의에 관해선 거의 탑을 찍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태어난 나름의 시대적 배경이 있는 만큼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가자.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은 공산혁명이 러시아 같은 후발 열강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크나큰 비극이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산주의의 역설이다. 공산주의는 자본가보다 노동자에게 더 어필이 되는 사상인데 당시 시대상으로 노동자=빈민층이다. 하지만 빈민층에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당시 유럽에는 노동자 빈민층보다 농민 빈민층이 훨씬 많았다. 특히 러시아는 절대적으로 농민 위주의 사회였다. 이렇게 산업화가 덜 되고 가난한 농민이 많은 나라일수록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었으니... 결국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난 건 우연이 아닌 걸까? 아니, 말은 바로 해야겠다. 공산혁명이라기보다 공산혁명의 탈을 쓴 체제전복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었다. 현실적이라 한 이유는 공산주의를 러시아의 현실에 맞게 변형할 것은 변형하여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볼셰비키 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이성적이라 한 이유는 혁명을 완수하면 그 이후로는 알아서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줄 믿었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난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다 보니 스탈린의 적색 개발주의(국가 주도 경제 개발주의)가 정당화된 것은 필연이었다. 파이를 나누기 위해선 파이가 커야 하니까. 그리고 이 적색 개발주의는 독재라는 바이러스가 배양되게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다. 급속도로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소수의 이득을 위해 다수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소수는 결국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자본가와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중국의 갑부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총괄하기 위해선 강력한 행정력이 필요하다. 이게 현재 우리가 공산주의=일당독재라고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다. '이론적으로' 공산주의는 정당정치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상위 호환 버전임에도 말이다.
현재 거의 대부분의 국가는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사용하지만, 이는 명백히 잘못된 표현이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사회주의는 수정 자본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존을 지향한다. 반면, 공산주의는 노동자가 자본가를 지배하다가 종국에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이 없어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를 보면 역사는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대충 그런 방향'으로 흘러오긴 했다. 앞으로도 '대충 그런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혁명사를 이해하는 것은 나름의 현실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정치가의 이상과 현실 정치가 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되는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레닌과 러시아 혁명은 이를 정말 극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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