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1년에 쓰였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세월이다. 어떤 것은 저자가 예견한 대로 되기도 했고, 어떤 것은 아직 진행 중이기도 하며, 어떤 것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인터넷의 발달로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저자의 주장에 나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우선 책의 제목은 잡노마드 사회이지만, 저자는 이 유목민적 특성을 비단 직업적인 것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노마드성이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유연성을 의미한다. 21세기의 덕목인 이 유연성은 사회를 더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만들 것이고, 이로 인해 (부정적인 면도 물론 있겠지만)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우선 이 주장의 방향에는 동의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저자가 말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그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저항하는 사람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노마드성은 사회 변화의 다양한 방향 중 하나이지, 모두가 그 방향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에선 많은 분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간단하게 한 가지 예만 보자. 저자에 따르면 유목민적 사회에선 정규직이 의미 없으며, 대다수 업무가 프로젝트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다양한 열정과 능력을 가진 잡노마드들이 성공적으로 그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별, 나이, 인종, 국경 같은 것은 '전통적인' 요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네트워크 기술은 이 모든 것을 의미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프로젝트를 받아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표와 전문가적 능력,
강점과 약점, 능력, 숙련도와 경험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판매하는 것이 바로 생계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잡 포트폴리오의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그러니까 여러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으면 있을수록,
적합한 프로젝트를 찾을 가능성이 그만큼 더 많다.
이처럼 개인이 다양한 능력과 숙련도를 갖추고 있으면 있을수록
지금껏 안정된 직장에서만 기대되었던 의미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p.232(리디북스 기준)
안정적인 직장은 없다. 자신의 능력만이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저자가 말하지 않는 '현실적인' 부분들도 존재한다.
- 저 노마드는 처음부터 전문가였을까? 그들도 처음에는 전통적인 조직에 '취업'하여 일하며 배우지 않았을까?
- 모두가 저런 능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그럼 평균적이거나 평균 이하의 사람은
전통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까?
- 오로지 능력만 있으면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을까? 오히려 학벌, 인맥 등의 '전통적인' 요소가 더 중요해지지는 않을까?
- 국경이 중요하지 않다는데, 그럼 그 노마드는 해외 클라이언트와 일할 때 무슨 언어로 대화할까?
영어가 아닐까? 누구나 외국인과 일하는데 부족함 없는 영어 실력을 가질 수 있을까?
- 업무 노하우는 오로지 노마드 개개인이 쌓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 누구나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가며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닐까?
-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전통적인' 사회안전망이 정말 필요가 없을까? 누군가에겐 필요하지 않을까?
- 업무를 통한 자아실현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노마드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즉,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적당히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유명 유튜버를 예로 들며 유튜버가 유망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랄까? 유튜버가 유망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말하는 노마드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에겐 천국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에겐 오히려 현재보다 더 가혹한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능력있고, 열정적이며, 다양성을 존중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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