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는 이미 너무도 유명한 책이기에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고대 중국사는 사기가 출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다수였으나,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는 마음으로 재밌게 읽었다.
책은 크게 6가지로 주제를 나누고 있다.
- 성공학 : '시정잡배' 유방은 '영웅' 항우를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는가?
- 창업과 수성 :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진나라는 왜 그토록 급속하게 몰락했는가?
- 전략 : 손자, 오기, 한신의 필승 비법
- 조직 관리 : 한무제, 상앙, 소하에게 배우는 승리하는 리더와 실패하는 리더
- 부의 비밀 : 범려, 백규 등 역사 속 부자들이 말하는 부의 법칙
- 권력의 본질 : 이사, 진섭, 여태후가 보여주는 교훈
어려서야 항우와 유방의 초한대전, 진시황의 성공과 몰락, 손자와 한신의 귀신같은 전술 이야기 등이 훨씬 재밌는 주제였을 것이다. 허나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그런 영웅적 서사시보다 조직 관리(4부)와 권력의 본질(6부)이라는, 뭔가 더 무겁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더 재밌게 느껴졌다. 왜 옛날에 아버지들이 뉴스나 정치드라마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한무제>
사마천의 의하면 한무제는 실패한 리더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부하의 실패에 관대하지 못했으며, 상을 내림에 있어서도 황제 본인의 기분에 따라 기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를 조직관리에 적용해보면 합리적인 KPI와 공정한 평가 기준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인사에 대해 늘 뒷말이 나오면 그 조직은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상앙과 맹자>
상앙은 힘과 이익을 앞세운 패도정치, 맹자는 인과 덕의 통치를 강조한 사람이다. 이 서로 다른 통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야 한다. 상앙의 방식은 난세에, 맹자의 방식은 치세에 어울린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2가지를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섞어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은 없는데 덕만 앞세우면 호구가 되고, 덕은 없이 힘만 내세우면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
<소하와 조참>
상국 소하의 후임은 조참이었는데, 그의 기재는 소하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조참은 더도 말고 소하가 하던 대로 통치하니 곧 천하가 태평해졌다고 한다.
소하가 법령을 제정하니
뚜렷하게 한 획을 그었네
조참이 소하를 대신했는데
법령을 그대로 지키며 바꾸지 않았네
그 맑고 고요함으로 나라를 다스리니
백성들은 한결같이 편안할 뿐이네
<조상국세가>
보통 이 일화는 오랜 전란 이후 무위의 치로서 민심을 얻고 정치적 안정을 이룬 한나라의 성공 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난 좀 다른 측면을 보았는데, 바로 매뉴얼의 중요성이다. 맨파워에 의존하는 조직은 롱런하지 못하는 사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관료사회처럼 매뉴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실무자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일정 수준 이상 퍼포먼스를 내도록 운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생각한다. 조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소하가 하던 대로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즉 '무위의 치'에서 '무위無爲'가 아닌 '치治'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태후>
여태후는 보통 악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그녀를 악녀로 보던 이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유씨 황족들과 개국 공신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사마천에 따르면, 지배층과 달리 백성들은 여후의 덕을 칭송했다고 한다. 고조의 치세는 공신들의 반란과 한-흉노 전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여후의 시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백성의 생활이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경우는 역사에 굉장히 흔하다. 다만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며, 그 판단기준에 대한 확고한 근거와 신념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또한 역사 속의 인물을 '그러므로 여후는 ㅇㅇ였다'라는 식의 한 문장으로 결론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여후는 정말 한나라를 여씨의 천하로 만들고 싶었던 건가?
본인 사후의 정치적 플랜이 있었나?
단순히 권력에 눈이 먼 아녀자일 뿐인가?
그녀가 과연 애민정신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린 것일까?
의도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백성들의 삶이 풍족해졌으니 괜찮은가?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고대에 사실상 천자로 군림했던 그녀는 중국 제1호 페미니스트인가?
그녀는 아들인 혜제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패륜적 어머니인가?
마지막으로 사마천의 역사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기는 다른 역사서와 다른 2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역사를 서술하는 점에 있어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항우와 여후를 제왕으로 인정하여 본기에 올린 것이나, 진나라 최초의 민중봉기를 일으킨 진섭을 제후의 격으로 세가에 올린 점 등이다.
둘째는 민중을 단순히 수동적인 피지배층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역사를 단순히 제왕과 제후들의 이야기에서만 찾지 않았다. 민중의 힘을 역사를 흐르게 하는 원동력의 당당한 한 축으로 인식하고 서술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100년 전에 이토록 '현대적인' 관점을 제시한 사마천의 식견은 참으로 놀랍다. 사기 이후로 사마천과 비슷한 시각을 가진 역사서가 쓰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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